겸각 2015. 8. 29. 15:47







"야금야금 꽤 많이 빼돌렸더구나, 찍찍아."

 거만하게 의자에 기대어 앉은 채 장량이 제 앞에 무릎 꿇은 사내를 바라보았다. 손발이 묶인 채인 사내는 이미 만신창이었다. 곳곳이 터지고 멍든 꼴이 천박하기 그지없었다. 사내를 느긋하게 내려다보며 느리게 눈을 감았다 뜨는 것이 퍽 태연자약했다. 찍찍아, 라는 말에 제 뒤에 선 이들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으나 무어라 할 생각은 없는지 장량 역시 키들키들 웃음을 흘렸다. 특유의 비죽이 올라간 입꼬리가 퍽 유쾌해 보였다. 담배케이스에서 담배를 꺼내어 입술 새로 필터를 잘근 씹었다. 냉큼 옆의 아이 하나가 불을 붙여준다.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고 뱉어내며 덜덜 떨고 있는 사내의 꼴을 죽 훑었다. 

"우습구나. 이제 와서 발발 기는 꼴이."

 내 아래 있으면서 아직도 모르겠던? 그렇게 썰려나가는 것들을 네 눈으로 직접 보고도 이렇게 미련하게 구는 이유가 뭘까. 응? 오냐 오냐 잘 해주니까 내가 개호구로 보였어? 기회를 줄 때, 잘 대해줄 때 잘 해야지. 자꾸 이렇게 너 같은 쥐새끼들이 돌아다니면 내 체면이 뭐가 되겠어, 안 그래? 아랫놈들 관리도 제대로 못 하는 새끼라는 소리를 내가 들어야 되겠나? 

 장량은 짧둥해진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는 구둣발로 지익 짓밟았다. 벌어진 잇새로 붉은 혀가 얼핏 보였다. 혀로 제 송곳니를 쓸며 마이를 벗어 뒤에 서있는 이에게 건넸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사내의 앞으로 다가선 장량은 사내의 머리칼을 쥐더니 그대로 땅에 처박았다. 몸부림치는 사내의 몸짓에도 단단히 머리채를 틀어쥔 손은 몇 번이고 사내의 머리를 땅에 내리치고서야 떨어졌다. 부드러이 웃고 있는 얼굴은 퍽 행동과 어울리지 않았으나 미소는 사라지기는커녕 더 진해졌다. 쓸리고 터진 이마에서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입이 틀어막힌 사내는 알아듣지 못 할 말을 웅얼이며 흐느낄 뿐이었다.

"자, 우리 찍찍아. 마침 오늘이 생일이더구나. 내 친히 직접 선물을 마련했으니 기쁘게 받으렴."

 장량이 손짓하자 검은 정장을 차려 입은 남자 둘이 꽤 큰 상자를 사내와 장량의 사이에 내려놓았다. 그것은 기괴한 느낌이 들게 했다. 그저 상자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래, 딱 관 같은 느낌이었다. 나무로 짜여진 직시각형의 관. 손발이 묶인 사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읍읍 무어라고 말을 내뱉는 것 같긴 하나 장량은 그에 관심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래, 손이 묶여있어서 열어보질 못 하겠구나."

 장량이 구둣발로 상자의 뚜껑을 밀어냈다. 시선은 사내의 얼굴에 진득히도 닿아있었다. 그 감정의 변화를 관찰이라도 하듯이. 상자 안에는 물이 그득 차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사내의 두 눈에서 줄줄 눈물이 흘러 피와 섞이며 떨어져 내렸다. 그 표정에 장량은 입이 찢어져라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쭈그려 앉아 사내의 뺨을 퍽 다정스레 쓸어내렸다.

 발가벗은 채로 물에 잠긴 여인내의 시체. 보통 물에 잠긴 시체는 불어터지기 마련인데. 여자의 시체는 자잘한 상처와 목이 졸린 흔적만 빼면 퍽 멀쩡한 모양새였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체라는 것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을 만큼. 심지어 그득 담긴 물에는 금붕어 몇 마리가 꼬리를 살랑이며 헤엄치고 있었다. 뻐끔이며 숨을 내뱉고 물속을 유유자적 돌아다니는 금붕어의 주홍빛 몸이 퍽 예뻐 보였다.  

"선물이 마음에 들까 모르겠어. 네 어여쁜 부인. 그래, 오랜만에 보겠구나. 응? 마지막으로 봤을 때도 지금처럼 예뻤나? 아주 창녀가 따로 없더구나. 천박하게도 신음을 흘리며 앙알이고 애액을 질질 흘리던데. 다른 이들의 좆을 빠는 것이 참으로 능숙하고. 더 들려주랴?"

 사내는 장량의 말에 맹렬하게 고개를 저었다. 손이 묶여있지 않다면 귀라도 막을 텐데 그 정도의 자유마저도 사내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그것을 잠시 바라보던 장량은 칼을 꺼내들었다. 첨예한 칼끝이 단번에 사내의 귀를 베어냈다. 억눌린 비명소리가 창고 안을 울렸다. 칼에 묻은 피를 대충 사내의 옷에 문질러 닦은 장량이 퍽 속상하다는 표정을 꾸몄다.

"네 부인의 마지막에 대해서 상세히 일러주겠다는데도 듣기 싫다고 하니, 참으로 너무하는구나. 근데 귀만 잘라서는 여즉 들리지?"

 어찌, 귓속이라도 쑤셔주랴? 그럼 안 들리지 않겠어?

 제 셔츠에 튄 피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칼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자 사내의 눈이 질끈 감긴다. 그 얼굴에 그득찬 공포. 그것에 장량은 웃음을 흘렸다. 칼을 치워내고는 퍽 거친 손으로 사내의 뺨을 툭툭 두드렸다.

"너무 그렇게 겁먹고 그러지마. 안 해. 안 해."

 장량은 몸을 일으켜 피가 튀고 흐트러진 제 옷차림을 보고는 쯧 혀를 찼다. 그 동안 애썼다, 찍찍아. 난 너를 퍽 어여삐 여겼건만 내게 돌아오는 것은 네 배신뿐이구나. 씁쓸하구나, 씁쓸해. 맡겨둔 마이를 다시 걸쳐 입으며 장량이 나지막이 말했다.

"인신매매 부서에 연락 넣어라. 가격은 적당히 그쪽에서 이득 볼 만큼으로 정하도록. 안에든 것 싹 빼고, 껍데기는 저 여자 시체랑 같이 드럼통에 넣어서 바다에라도 던져버리렴."

 평생 사랑하는 부인과 함께 하라는 내 마지막 배려란다.




"저기, 형님."
"그래, 말 해보렴."
"저 새끼가 약 빼돌리기 시작한 것. 한참 전부터 알고 계셨던 것 같은데 왜 지금까지 그냥 두셨는지..."
"안 지 꽤 됐지. 그저 때를 기다린 것뿐이란다. 마침 생일도 머지않았었고, 최고의 선물을 주고 싶었지. 말이야 많이라고 했지만 솔직히 별로 많이도 아니었어."

 작은 이벤트이자 유희(遊戲)지. 퍽 즐겁지 않았나?

 장량은 테이블로 다가가 어항을 내려다보았다. 화려한 꼬리를 흔들며 헤엄치는 금붕어 한 마리. 그래, 퍽 예쁘네. 금붕어에게 먹이를 주며 장량은 슬 웃었다.

 잘 먹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