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낙 원
이 낙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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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 / 마름
십 년이면 세상이 한 번 바뀐다는데 그럼 세상은 벌써 열 번은 바뀌었겠다.
처음 소년이 돌아왔을 때, 소년의 검은 머리카락은 목께에 닿는 길이였다. 빠르게 주변을 살피는 시커면 눈동자는 날카롭기 그지 없었고 무엇인지 모를 감정으로 가득했다.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소년은 여전히 희었다. 흰 피부에 곳곳이 자리잡은 흉터가 기이하게 보일 정도로. 그곳은 해가 없단다. 아무 것도 자라지 못하고 바닥엔 잔폐허들만 가득했어. 살아남은 것은 몇몇의 짐승과 인간들 뿐. 그마저도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사냥하고 침을 흘리며 바라보는.
열아홉의 소년이 백 년이라는 시간을 건너 돌아왔을 때에 소년은 더이상 소년이 아니었다. 스물 셋. 돌아온 소년, 혹은 청년이 처음 사람을 봤을 때 소년은 웃었다. 돌아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또 다시 다른 세계에 떨어졌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소년은 처음 상담을 할 때에 말했다. 그리고 소년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생각했다고 한다. 나이가 어려 보이는데 , 저 나이게 저렇게 웃을 수가 있을까.
소년은 자신이 돌아왔음을, 그리고 이제 이 세상에 자신을 아는 사람이, 자신이 아는 사람이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 그 때 딱 한 번 소년은 울었다. 그리고 말했다. 저를 죽여주세요.
첨벙첨벙. 피웅덩이에서 헤엄쳐 본 적 있니? 빨갛다 못해 검게 보이는 그것들은 지독한 냄새가 났단다. 썩고 썩어가는 것들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낸 것들. 혹여라도 냄새를 맡게 되면 구역질이 나는 그런. 그곳에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단다. 내가 아무런 냄새를 맡지 못하게 된 까닭은. 네 살내음이 맡고 싶다. 아무리 살갗에 코를 박고 숨을 들이쉬어도 아무 것도 모르겠으니. 근데 우습게도 살내음은 몰라도 그 맛은 알고 있단다. … …. 겁 먹었니? 왜. 네게 달려들어 네 살을 죄 씹어 삼키고 뜯어먹을까봐?
나는 사람의 온기가 참 좋단다. 식어빠진, 생기 없는 죽은 것들은 차갑기 그지 없어서, 끊임없이 온기를 바랐는데. 근데 그것 알고 있니? 아무리 좋아도 음식을 사랑할 순 없단다. 음식은 그저 주린 배를 채우고 살아남기 위한 것이지 그것에 입을 맞추고 달큰한 밀어를 속삭이는 것은 이상하잖니.
너무 그렇게 이상하게 볼 필요 없단다. 너도 알고 있잖니. 생존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것이 인간이란다. 같은 인간을 잡아 먹는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없는 곳이었단다, 그곳은. 그것이 당연시 되는 곳이었지.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은 그대로 도태되는 거야. 그대로 다른 이들에게 잡아먹히며 절규하며 죽는 것이란다.
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미쳤다고 생각하니? 근데 너는 그것도 알아야 해. 그 사람들이 보기에 너는 돌연변이고 미친 것은 너라는 것을. 다름을 들키지 말아라. 정상인 척을 하렴. 그렇지 않으면 너 역시도. 자, 살아남는 법을 알려줄게. 너도 저들을 따라 미쳐버리면 되는 것이란다. 그것이 싫다고? 네 선택권은 박탈된 지 오래란다. 이 곳에 떨어진 순간부터. 소년은 예쁘게 웃어보였다. 세계가 바뀐다면 바뀔 때 마다 거기에 맞추면 된단다. 주변을 관찰하렴. 그리고 익히렴. 정상처럼 보이도록.
▶ 움직이지만 감각이 없는 오른손. 후각상실.
▶ 의식적으로 짓는 미소.
▶ 불면증. 강박증. 과호흡 증후군. 쌓여가는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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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