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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春夏
    무법자의 도시 2015. 9. 16. 16:56


     

     

     

     



     자장자장. 아가야. 잠을 자거라. 새근새근 고른 숨을 내쉬며 달큰한 봄잠을 자렴. 고 작은 손가락을 잔뜩 옹송그려 주먹을 쥔 손이 귀엽구나. 자장자장. 아가야. 예쁜 꿈을 꾸렴. 아름아름 꽃잎이 흩어지는 것을 보렴. 고 작은 손으로 꽃잎을 잡으려 바동이는 것이 어여쁘구나. 아가야. 아가야. 혹시 네 어미 보거든 한 번 꼬옥 안아주렴. 네 고 작은 품에 한아름 안아주렴. 그리고 한 번 웃어주렴. 네 고 해사한 미소를 보여주렴. 마지막으로 한 번 입 맞춰주렴. 네 고 입술을 뺨에 대어주렴. 아가야. 아가야. 좋은 꿈꾸고 있느냐. 살랑이는 봄바람마저도 너를 위해 잔잔해지는구나. 팔랑이는 나비가 저를 보아달라는 듯 너를 따라 오는구나. 아가야. 아가야. 어여쁜 꿈을 꾸거라. 고운 봄날에 어미 품에 안겨 잠들지 못 하여 서러이 망울망울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면 한단다. 아가야. 아가야. 잠에 들거라. 어여쁜 네 어미, 꿈에서라도 만나고 오너라. 자장자장. 아가야. 잠을 자거라.

     

     

     

     

     고른 숨을 내쉬는 아이의 모습에 장량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혹여 깰까 가슴께를 도닥여주는 손길은 조심스럽고도 다정했다. 아이는 태어날 적부터 간신히 살아있다고 봐도 좋을 만큼 약했다. 작디 작은 그 핏덩이, 제 아이를 봤을 때, 그 때 만큼은 장량은 제 감정을 파악하지 못 했다. 기뻐해야 하는가, 아니면 슬퍼해야 하는가. 내 새끼, 내 자식이 세상에 첫 숨을 트인 것은 기뻤으나 그로 인하여 다시는 눈을 마주치지 못 할 제 사람을 떠올리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애초부터 아이를 낳는 것은 큰 위험이었다. 그러나 그 고운 이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저를 졸랐다. 아량(阿良), 우리 둘 꼭 닮은 예쁜 아가가 있었으면 좋겠어. 저는 그 말을 모질게 거절할 수 없었다.

     

     

     

     

     앙알이며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품에 안아 달랬다. 어색함과 불안을 알아채기라도 했는지 아이는 울음을 그칠 줄을 몰랐다. 어색한 손길로 아이를 어르며 웃어보였다. 아가야. 아가야. 아빠란다. 울음을 그치렴. 네가 그렇게 울면 네 어미가 슬퍼한단다. 제 목숨과 맞바꾼 아이. 그래, 너는 나 보다 강했다. 비록 언제나 여리고 고왔을망정 마음만큼은 나 보다 단단하고 다부졌다.

     

    "아량. 아이는, 우리 아가는? 보고 싶어…."

     

     가느다란 호흡을 간신히 잇고 있는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창백하게 질린 피부, 주렁주렁 달린 의료기구들, 흐린 눈동자. 모든 것들이 한 가지를 가리키고 있었다. 믿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아이를 갖자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면 이런 상황은 오지 않았을까? 작은 물음이 떠올랐으나 아이를 찾는 모습에 그것을 떨쳐내었다. 이 마지막 순간에 그런 생각 따위 하고 싶지 않았다. 일분이라도, 일초라도 마지막 모습을 가슴 속에 새겨야 했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바라보아야 했다. 우는 아이를 조심스레 품에 안겨주었다. 아이는 제 엄마 품을 알기라도 하는지 금새 울음을 그쳤다. 조심스럽게 아이를 보듬어 안는 그 광경이 지독히도 아름다웠다.

     

    "아가야. 엄마야. 엄마…. 아가야. 네 아빠 잘 부탁해. ? 사랑해. 우리 아가."

     

     시야가 부옇게 흐려졌다. 그리고 이내 맑아졌다. 뺨을 타고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가까이 오라는 손짓에 옆으로 다가섰다. 흐르는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다. 제 손을 잡아오는 손이 차가웠다. 체온이라도 나누어줄 수 있다면 좋을 것을. 제 거친 손으로 하얗고 작은 손을 감쌌다.

     

    "기뻐서 우는 거지? 우리 아이가 태어나서, 기뻐서 우는 거지…?"

     

     마주 닿는 시선은 따스했고, 꺼져가는 등불처럼 흐릿했다. 어렵사리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다. 손으로 뺨을 느리게 쓰다듬었다. 그리고 천천히 감기는 눈꺼풀. 허리를 숙여 이마에 눈에 코에 뺨에 천천히 입을 맞추었다.

     

    "나는, 후회하지 않아…."

     

     이제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아주 작고 흐릿한 목소리였다. 팔을 뻗어 조심스레 보듬어 안았다. 내 아이며, 내가 사랑하는 이까지. 그리고 이제는 멀어져가고 있을 의식에 마지막 말을 전했다.

     

    "나도… 후회하지 않아."

    "웃어줘. 아량…. 웃는 얼굴이 보고 싶어…."

     

     힘없이 늘어진 손을 붙잡아 제 뺨에 대었다. 채 눈물도 닦아내지 못 하고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비록 보지는 못 하겠지만 느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게 서서히 식어가는 체온을 놓지 못 하고 붙들고 있었다. 정신을 차린 것은 한참이나 지나서 아이가 울음을 터트렸을 때였다. 빼액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를 다시 품안에 안았다. 천천히 등을 쓸어내리며 어렵사리 웃어보였다.

     

     

     

     

     집으로 돌아갈 때면 발걸음이 무거웠다. 아무리 피 묻은 옷을 갈아입고 피냄새를 지워본들 그것이 온전히 사라지지 않는 듯한 껄쩍지근한 느낌. 아이는 사랑스러웠다. 그런 아이를 다른 이에게 맡기는 것도, 얼룩진 손을 아이에게 뻗는 것도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럼에도 아이가 앙글앙글 웃는 모습이 그리 어여쁠 수가 없더라. 집으로 들어서 조심스럽게 작은 아이를 안아들며 도리어 그 작은 온기에 제가 위로를 받았다. 그래, 아가야. 언제나 이리 웃어주렴.

     

     

     

     

     

     불행이란 언제나 소리 없이 갑자기 들이닥치는 법이었다. 화사한 봄날에 세상과 만난 아이는 한여름의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가 되어 제 어미의 품으로 돌아갔다. 고 하이얀 피부에 붉은 열꽃이 피었다. 눈가가 짓무를 만큼 눈물을 흘리며 우는 아이는 열에 들떠 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 했다.

     

    "…죄송합니다. 저희로서는 손 쓸 방법이 없습니다."

     

     방법이 없다는 그 말이 그토록 잔인하게 들릴 수 있을까. 이제 겨우 넉달을 넘긴 아이가 이렇게 허무하게 먼 길을 떠난다는데, 아무 것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니. 삐익. 삐익. 고 작은 몸에 연결된 의료기기들. 심전도계에 표시된 아이의 희미한 심박. 지쳐 잠이든 아이는 제 손가락 하나를 꼭 붙든 채였다. 그것이 못내 가슴을 울컥이게 만드는 것이었다. 칠월 말에 병원에 입원한 아이는 대견하게도 꼬박 근 삼일을 버텨내었다. 그리고 이내에는 삼십일일에서 팔월 일일로 넘어가는 새벽. 꽃 같은 아이는 마지막 호흡을 내쉬며 그렇게 깊은 잠에 들었다.

     

     

     매년 칠월 말이면 항상 몸살처럼 앓았다. 음식이라고는 삼키는 족족 소화를 시키지 못 하고 게워내었다. 지끈이는 두통이며 어지럼증이 가시질 않았다. 무엇이라도 짊어진 것 마냥 온 몸이 무거웠고 무언가 숨통이라도 죄는 것처럼 호흡이 얕았다. 이것이 정신적인 문제라는 것을 분명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약 조차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저 견뎌내야 할 뿐이었다. 우습게도 통증은 시간이 팔월을 향해 갈수록 잦아들었다. 꼭 칠월 말이면 찾아오는 이것이 제 죄책감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 날이면 그저 그 통증을 참아내는 것이었다.

     

     팔월이 되면 꽃집에서 여름꽃을 종류 별로 한아름을 샀다. 그 중에는 장미와 작약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이의 엄마가 좋아했던 꽃들이었다. 여름꽃은 아이를 위한 것이었고, 장미와 작약은 그녀를 위한 것이었다. 새시장에 들러 작은 새 몇 마리도 샀다. 꽃이며 새장을 들고 도착한 곳에서 한참을 서있었다. 일 년에 한 번 들를 뿐이었으나 사람을 두어 관리하는 덕에 언제나 정갈하게 다듬어진 채였다. 들고 온 꽃을 내려두고 새장을 열었다. 날갯짓을 하며 멀어지는 새를 바라보았다. 낮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이내 입꼬리를 당겨 웃어보였다.

     

     

     

     

    시곗줄에 가려진 왼쪽 손목의 숫자 나열. 19XX. 08. 01. 


    *아량(阿良) - 량의 애칭

    *춘하(春夏) - 봄과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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