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구 희 원
    프로필 2017. 9. 17. 17:14




    " 나는 원하지도 않았는데"




    구 희 원


    19


    179/58


    구 원 이 우 환 이 라.

     희원아. 괜찮아. 엄마가 다 괜찮게 만들어줄게. 주님도 도와주실 거야. 눈을 내리깔았다. 검은 눈동자가 살풋 속눈썹에 가려졌다. 움푹하게 팬 눈 밑이 거뭇했다.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대체 무엇을? 뼈가 도드라진 마른 손을 보듬는 것에 굳이 물음을 던지지 않았다. 흐트러진 검은 머리칼과 허여멀건 피부의 대조는 구희원을 더욱 병색이 완연해 보이게 했다. 버적하게 마른 입술을 제 손가락으로 슬 쓸었다. 그것은 일종의 작은 버릇이었다. 색이 옅은 입술은 이따금이면 붉은 핏방울이 맺혔다. 붉은 피. 그래, 그것은 구희원에게 있어 가장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내 그 핏방울은 자취를 감췄다. 입술의 핏망울이 손끝으로 번져 물들었다. 그리고는 그 손가락을 감추기라도 하려는 듯 조용히 주먹을 쥐는 것이었다. 

      꽤나 더운 날씨에도 구희원은 하복 위에 무채색의 겉옷을 입고 있었다. 구희원은 여름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그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요약하자면 대체로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우선 첫 번째로는 제 비쩍 마른 몸을 들어내는 것이 싫었다. 어떻게 이렇게 점점 살이 더 내려. 희원아. 무슨 일이라도 있니? 엄마한테 말 좀 해봐. 응? 제 어미의 물음에도 구희원은 그저 묵묵히 눈을 내리깔았다.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엄마가 챙겨준 것들은 다 잘 먹고 있는 거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른 입술 새로 작게 웅얼거리듯 응. 하는 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하다. 그 약들이 매번 쓰레기통으로 처박히고 있다는 것을 구희원은 말하지 않았다. 천천히 마른 등을 쓸어내리는 손은 따스한 온기를 품고 있었으나 구희원은 그것이 서늘하다고 느꼈다.

     두 번째는 옷으로 가려진 곳들에 즐비한 생채기들 때문이었다. 팔 위쪽의 살은 이미 자잘한 상처로 가득했다. 비단 그곳 뿐만이 아니었지만. 끼리릭. 커터칼이 내는 소리가 섬칫했으나 구희원은 덤덤한 표정이었다. 날카로운 칼날로 주욱 살을 그어내리며 망울이며 맺히는 붉은 것을 바라보았다. 너무 깊지 않도록, 그러나 피가 날 정도로. 딱 그 정도면 되었다. 조르륵 떨어지는 피를 보며 구희원은 작게 웃었다. 혹은 울었을지도. 


    *구원이 우환이라. - 남을 구원하여 준 것이 오히려 큰 우환거리가 되었다는 뜻으로, 남이 잘되도록 해 준다는 것이 그만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은 경우에 이르는 말.


    나 는 신 을 믿 지 도 않 는 데.

     희원아. 우리 아가. 네가 아픈 것은 다 주님을 믿지 않아서 그래. 엄마랑 같이 기도하자. 응? 그럼 다 나을 수 있어. 희원아. 우리 예쁜 아들. 불쌍한 우리 엄마. 정말 그렇게 믿는 거야? 구희원은 침묵으로 일관하며 제 어미를 그저 바라보았다. 어려서부터 잔병치레가 잦았던 구희원. 구희원은 한 번도 제 어미에게 속을 털어놓은 적이 없었다. 우리 아들처럼 착한 애가 세상에 어디 있어. 그 말에 구희원은 설핏 웃었다. 여전히 시선은 바닥을 향한 채였다. 착한 아이? 엄마, 나는 자해를 하고 있어요. 커터칼로 살을 그으며 웃었어. 그런데 내가 착한 아들이에요? 정 말 로?

     빌어먹을 새끼. 제 동생, 구희제가 내뱉는 말을 들으며 슬 웃음을 흘렸다. 미안해, 희제야. 별 감정이 담기지 않은 사과에 사납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같잖은 소리하고 있네. 구희원은 다정을 가장하며 저보다 큰 동생의 뺨을 쓸어내렸다. 구희제는 그 손을 붙잡으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구희원. 요즘도 계속 자해하고 있지? 그 물음에 구희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긍정이라는 것을 아는 구희제는 작작하라고 구희원을 다그쳤다. 그러고는 이내 풀이 죽은 강아지처럼, 혹은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어린아이 같은 태도와 어조로 선을 넘지 말라고 말했다. 알고 있지? 구희원. 적정선을 넘지 마. 그것에 고개를 끄덕이며 구희원은 눈을 내리깔았다. 그럼. 알고 있어.

     그렇다고 해서 구희원이 마냥 우울에 찌들고 소심함이 넘실거리는 놈은 아니었다. 여느 열아홉 소년들과 그다지 다를 게 없었다. 다만, 보통의 열아홉 소년이 이러지는 않겠지. 구희원은 신을 믿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나름 성실하게 학교 생활에 임했다. 주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 그 사실을 구희원은 누구에게도 표내지 않았다. 구희원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은 마치 예배를 드리는 듯했으나 구희원은  그저 사색에  잠겨있을 뿐이었다.  속눈썹이 잘게 떨리며 눈꺼풀이 들러올려지고 그 서늘하게 식은 시체와도 같은 죽은 눈동자가 드러났다.

    구원. 나에게 구원은,



    부모. 독실한 천주교.


    자해. 이 통증이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해.


    불면증. 수면제가 필요해. 죽음과도 같은 숙면을 위해서.


    신학회. 나는 신 같은 걸 믿지도 않는데 왜 나를 여기에다가 쑤셔 넣었어요?


    -

    약탈교실



    '프로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 흔  (0) 2017.09.17
    임 제 오  (0) 2017.09.17
    장 량  (0) 2017.09.17
    도 재 희  (0) 2017.09.17
    함 금 조  (0) 2017.09.17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