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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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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부
느른하게 숨을 내쉬는 남자의 숨결에는 담배내음이 났다. 얇은 입술에 빼어문 담배의 끝자락에선 허연 연기가 피어올라 천천히 흩어졌다. 담배 연기를 거둬내는 남자의 손은 굳은 살이 박혀 있었으며 투박하고 거칠었다. 이마로 쳐져 내려온 머리칼은 검었고 그 아래의 눈은 흉흉함을 품은 채였다. 사나운 짐승의 눈동자와도 같은 거먹한 눈 위로 자리잡은 짙은 눈썹과 미간에 슬며시 자리잡은 옅은 주름이 남자의 인상을 더 날이서 있도록 만들었다. 눈썹뼈와 오뚝한 콧대가 남자의 얼굴에 짙은 그림자를 자아내었다. 무정을 띈 눈은 도통 남자의 의도를 알아 챌 수 없게 만들었다. 남자는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았고 그럴 때면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남자의 웃음은 작위적인 태가 났다. 감정으로부터 시작된 웃음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라도 알기 쉬운 것이었다.
남자는 늘 단정한 정장 차림이었다. 입는 정장은 늘 맞춤으로 정장 본연의 태가 났고 남자의 몸에 꼭 들어맞았다. 셔츠의 단추는 끝까지 잠갔고 넥타이를 깔끔히 죄여 매었다. 남자의 옷차림은 언제나 넥타이며 커프스 버튼, 시계 같은 것들이 빠지지 않았고 그것들은 언제나 고가의 물건인 듯 했다. 날이 추워진다면 코트와 목도리 정도가 추가될 뿐이었다. 남자의 옷차림은 언제나 살갗을 다 가리는 차림이었다. 드러난 곳이라고는 손과 얼굴 정도일까. 지독히 더운 여름날에도 남자는 긴소매의 정장을 입었다. 그렇기에 남자에게 문신이 있는지 없는지 아는 이는 극히 드물었다.
남자는 왼 다리를 절었다. 늘상 다리를 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따금씩 다리를 절을 때면 남자의 미간에는 깊게 주름이 패였다. 그런 날이면 남자는 지팡이를 짚곤 했으며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정장 자켓 안 주머니에서 담배케이스를 꺼내어 줄담배를 피워댔다.
00. 존댓말. 그것이 온전한 것인지는….
01. 등 전체를 덮는 봉황 문신. 잘 보이진 않지만 그 아래로 무수하게 난자된 흉이 가득했다.
02. 왼쪽 무릎가에는 커다란 흉이져 있다.
03. 총을 다루는 것도, 칼을 다루는 것도 익숙하지만 총을 더 선호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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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연의 시간